창고에 안 쓰는 물건들은 정리하고 나니 힘써서 방귀라도 뀐 것처럼 시원하다. 언젠가는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해 붙들고 있던 것들을 이번에 싹 처분하고 나니 정작 남은 것은 전동드릴, 그라인더, 망치, 펜치, 피스, 못, 톱 등등 공구 몇 가지가 전부라 헛웃음이 나온다. 발 디딜 틈 없이 ..
시작은 사소했다. 곶감 덕장 앞이 좁아 경사진 곳에 축대를 쌓고 땅을 약간 넓혔는데, 그곳은 원래 차가 접근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장비가 어렵게 겨우겨우 들어가서 조심조심 축대를 쌓고 소중한 공간을 창조했다. 덕장 앞 공간은 택배차가 항시 드나들고 곶감 작업을 시작하는 가을부터 겨울에는 내 트럭이 수시..
새벽에 잠이 깨는 바람에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켰다. 보려고 켠 것은 아니고 켜놓고 잠을 좀 청해볼까 해서였다.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TV는 효능이 뛰어난 수면제다. 이 특수기능에는 중독성이 있다. 한 때는 두껍고 유명한 소설책을 수면용으로 애용하기도 했다. 노벨상이나 맨부커 상을 받은 누구나 한번쯤 제목..
SNS에 ‘20대 사진 올리기’ 바람이 불고 있다. 온라인 친구들 나이가 5060이 많은데 이들이 삼사십년 전 한창때 찍은 사진을 올리고 있는 거다. 바람이 시작된 지 제법 오래 되었는데 그칠 기미가 안 보이고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처음엔 이게 뭐지? 유행인가보다~하고 좋아요~ 좋아요~ 최고예요~누르고 넘어갔는데..
지난해 예정되었던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이하 산삼엑스포)가 코로나 때문에 열린다 안 열린다 말이 많았다. 아내랑 내기를 했는데 나는 열린다에 걸고 지는 바람에 아내에게 재봉틀을 사주게 되었다. (근데 그건 어차피 사게 될 것이었다.) 일 년 연기된 후 올해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4차 대유행이 와서 또 열리..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최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하고 나서 이 책이 문득 생각났다. 왜냐면 이 책이야말로 아프간의 근대사를 잘 설명해주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호세이니의 첫번째 소설 ‘연을 날리는 아이’는 두 남자가 주인공이고, ‘천 개의 찬..
암고양이 이름으로 ‘모시’는 어떨까? 산책 중 엄천강변 길에서 데려온 어린 길냥이를 ‘모시’라고 불러주며 문득 예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떠올렸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은 줌파 라히리의 데뷔작인데 주인공 이름이 고골리다. 러시아 작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소설 ..
입추가 무색하게 덥더니 말복이 무색하게 시원하다. 어제 밤엔 자다가 깨어 창을 모두 닫았다. 기다리던 비도 내렸다. 그동안 많이 가물었기에 내린 비가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주에 또 올 거라고 하니 기다려본다. 골프 공 만큼 커진 감은 이번 비로 좀 더 굵어질 것이다. 정보화농업인 단체에서 온라인 농산물..
“곶감은 건시야~ 반건시는 곶감이 아니야~“ 함양 사람들은 반건시는 곶감으로 쳐주지 않고 건조가 잘 된 건시야말로 진짜 곶감이라고 한다. 함양은 옛날부터 임금님에게 곶감을 진상했을 정도로 곶감 말리는 기술과 전통이 내려오고 있기에 함양 곶감에서 곶감 만드는 장인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나도 함양에서 오..
고양이 이야기를 엮은 책이 나왔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고양이와 고양이에게 충성하는 집사의 동상이몽’, ‘얼떨결에 길냥이에게 간택 당한 지리산농부의 집사 일기’가 <고양이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드디어 출판되었다. 왜 ‘드디어’냐면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것이 지난 해 9월이었..
전통적인 곶감 건조방법은 이렇다. 1) 감을 (열심히)깎는다. 2) 깎은 감은 곰팡이를 방지하고 때깔을 유지하기 위해 유황훈증을 한다. 3) 감을 통풍이 잘 되는 덕장에 매단다(뿌듯). 4) 45일 전후 덕장의 감을 채반에 내린 뒤 주무르고 (예쁘게)모양을 만든다. 5) 떫은맛이 완전히 없어지면 포장한다. 십수년..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한다. 농사짓는데 날씨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다. 나도 이천평 과수원에 감 농사를 짓고 있기에 날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지난해에는 전국 감 작황이 평년의 30% 수준으로 부진했다. 전국적으로 봄에 핀 감꽃이 냉해를 입어 열매가 별로 달리지 않은데다가 여름 장마가 거짓말처..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요즘 군청이나 기술센터에 볼일이 있어 가면 공무원들이 한결같이 친절해졌다는 것을 체감한다. 물론 커피 한잔 대접하는 작은 호의가 개개인의 성품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디를 가나 항상 이런 친절을 접한다는 것은 공무원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된 매뉴얼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툭 소리가 나서 보니 하늘에서 파랑새가 떨어졌다. 기절한 것 같더니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푸드덕 날아갔다. 항상 전신줄 높은 곳에 있는 것만 보다가 가까이서 보니 파랑새가 왜 파랑새인줄 알겠다. 멀리서 볼 때는 부리와 발만 주황색이고 전체적으로 검푸른 색으로 보였는데 코앞에서 보니 파랑과 청록, 머리와 ..
마당에서 猫(묘)한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꼬리가 낯선 고등어랑 대치하고 있다. 하얀 장갑을 낀 두 파이터는 한걸음이면 펀치를 날릴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허리를 활처럼 휘고 몸을 풍선처럼 부풀린 채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위협적으로 하악하악 하다가 경쟁적으로 어디서 내는 소린지 가늠하기 어려운 고약..
<또 이따위 레세피라니>는 제목부터 재밌다. 제목이 재밌다고 내용이 재밌다는 보장은 없지만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가 쓴 거니 믿고 보는 거다. 함양도서관 큰 글자 책 코너에서 읽을거리를 찾다가 제목이 재밌어 빌려왔다. 베스트셀러 작가 배크만의 소설 한권,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
지난 해 봄에 장미를 세 그루 심었다. 신앙 강화의 주간에 지름신을 영접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삽을 들었다. 배달된 묘목은 상태가 아주 좋았고 모두 사계성 덩굴장미여서 꽃으로 뒤덮힌 멋진 울타리가 그려졌다. 올해 꽃이 피었다. 주차장 옆 장미 아치에 자리 잡은 한 그루는 아직 몇 송이 피지 않았지만 아주 실..
뒷산 뻐꾸기가 운다. 뻐꾸기 울면 모든 새소리가 묻힌다. 뻐꾹뻐꾹하고 하늘 가득 울려 퍼지면 색색의 장미가 화답하여 피고 오디가 익어 떨어진다. 꾀꼬리는 맑고 고운 소리로 노래하고, 소쩍새는 소쩍소쩍 밤을 새워 시를 쓴다. 홀딱벗고새도 제법 매혹적인 리듬을 치지만 뻐꾸기가 울면 이 모든 소리는 묻힌다. 뻐..
멋진 덩굴장미 사진을 구경하다가 욕심이 나서 5그루를 덜컥 주문했다. 6~7년 쯤 전 일이다. 주문할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아치를 감싸고 활짝 핀 장미는 정말 그림 같았다. 그런데 막상 묘목이 배달되고 심으려고 하니 적당한 자리가 안 보였다. 묘목을 심을 만한 자리에는 유감스럽게도 이미 다른 화초와 장미..
지리산둘레길이 국가 지정 숲길이 되었다. 이외 백두대간 트레일, 디엠지 펀치볼둘레길, 대관령숲길도 같이 지정되었다고 한다. 순천만 정원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되고 나서 면모가 크게 달라졌듯 지리산둘레길도 이제 새로운 얼굴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정말 힐링이 되는 숲길이 되기를 바란..